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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dyis 
해병대 주계 앞 풍경
주계(식당) 앞에 빼곡히 도열된 각 중대. 일이병들은 한껏 달려오느라 코에서 뜨거운 김을 훅훅 풍
기고 상병들은 제 앞에 있는 일이병들이 뭔 놈의 찜빠를 또 내지 않을까 염려 반, 협박 반의 눈초리
로 레이저를 내뿜는다. 이병이 츄라이 제대로 깔아놓고 잽싸게 달려나왔건만 일병 오장은 일이병들
목덜미에 대고 들릴듯 말듯, "디지고싶냐"를 쏴붙인다. 그 으르렁의 이유를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
다. 어짜피 생각해봤자 답이 안나온다는걸 알게 된 것은, 그러니까 그게 그냥 이유없이 으르렁거리
는 것이라는걸 알게 된 것은 내가 으르렁될 짬밥이 되고나서였으니까.

화기중대 병장 하나가 군팔 하나를 꼬나물고 있다가 다 피웠는지, 불도 끄지 않고 공중으로 휙 날려
버린다. 불 붙일때부터 예의주시하고 있던 일병 2~3호봉 두 놈이 기다렸단듯이 뛰어들어 떨어지는
담배를 손으로 받아내지만 담배는 역시 3호봉 캐치. 스타트가 느렸던 2호봉놈은 어쩔 줄 몰라하는
눈치다. 아 참. 손바닥으로 받아낸 꽁초를 끄려는 순간... 상병 5호봉의 기다렸단 듯의 한마디.

"동작그만".

타들어가서 아픈건 일병 3호봉 손바닥 위의 불똥 뿐 아니라, 일병 2호봉의 마음까지다.
밑에서 이럴진데, 위는 어떨까. 소대간 상병끼리의 알력 시소질과, 중대간 병장끼리의 은근한 파워
게임. 드디어 주계 입장. 오늘은 A중대부터 입장이다. 거무죽죽한 병장들이 우르르 들어가다가 휙
돌아보더니, 다음 달에 진급할 상병 말호봉에게 한마디.

"마 니도 걍 들어온나"

"...아임다~ ㅎㅎ"

"마 그냥 온나"

결국 상병8호봉은 어느 병장 손에 뒷덜미 잡힌 채로 질질 끌리며 병장들과 같이 주계로 먼저 입장.
주계 입장의 순서.  조직 내에서의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의식. 뒷덜미 잡힌채로 "이 쉐끼 존장 오바
똥기합질" 이란 소리 들으며 끌려들어가는 상병 8호봉의 얼굴은 "이러시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이제는 동급으로 인정해주는 병장 선임들이 고마워 죽겠단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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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계 밖에서의 이러한 일련의 행동 하나하나가 전시에 어떤 직접적인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주진 못
한다. 불 붙은 담배 꽁초를 손으로 받는 것이 전쟁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으며, 위계질서 확고히 다
져놓는 조폭 똘마니 교육이 기동사격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전혀 없다. 아예 없다.
그런데 혹시라도. 사격하기 위해 어떤 일이 우선되야 할까. 목표지점까지 이동하기 위해 준비를 해
야하고, 가는 동안 수 백, 수 천명의 인력과 보급품이 일사분란하게 한 모양 한 뜻(총 지휘)에 의해
컨트롤 되어야하지 않을까. 목표지점에 도달해서는 수백 명이면 수백 구멍의 총구를 한 방향으로의
일제히 향하게 해야하고, 그러니까...

A란 그룹에게 B란 준비를 시켜 C란 지점으로 이동해서 D라는 목표에 E의 액션을 취하게 하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명령이고, 실행이다.

실행은 아주 디테일한 것이다. 큰 소음과 진동에 장가도 못간 어린 20살짜리 아이들이 후덜거리는
상황에도 창백해진 얼굴이지만 지휘체계에 의해  주저없이 움직이는 일종의 "자아가 없는" 조직이
필요하다. 중대를 떠나 타지에서 적을 발견하고 방아쇠를 당기기까지의 과정에 얼만큼의 크고
작은 액션과 돌발상황이 펼쳐질 것인가. 그 돌발상황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비책은 끝을 알 수 없는
현실성 없는 시나리오 무한 작성이 아니라 "상황에 걸맞는 시스템 구축"이다.

그런 필요 시스템의 특성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직력이라고 부르고, 내부적으로는 군기강이라고
불렀으며, 우리는 "개념"이라고 칭했다. 실행이 상상 속의 디테일이었던만큼, 개념은 늘 과불급이었다.

또한 그 필요 시스템은 매우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고로 비민주적인 시스템이다. 하지만 어디
전쟁이나 전투가... 단 한번이라도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민주군대라는 것은 민
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의지와 능력을 갖춘 군대이지, 훈련과 작전을 민주적으로 투표에 붙여 결정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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